추석에 임박해서 성균관 차례상 발표가 있었다.
전을 차례상에 올려도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이 많이 가는 전이 빠져도 된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균관 소식을 반겼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아예 안 해도 되지 않나라는 말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어느 지역에서
차례상에 전을 올리는 문제를 두고
부부가 다투다가 상해를 입혔다는 뉴스도 나왔다.
실학자로 유명한 정약용 선생의
참으로 간소한 제사상 이미지도 넷상에 올라왔다.
우리 집은 올해부터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지 않기로 했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님께 올리고
자손들은 덕담을 나누며, 현재의 풍요와 안식에 대해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
그러나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명절, 그리고 제사 며칠 전부터
먹거리를 장보고, 다듬으셨다.
어느 재료가 더 싱싱하고 좋은지 고르기 위해서
부지런히 발품을 파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작은 어머니들과 분담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얄밉게도 작은 어머니들은 손 딱 놓고 있다가
당일 오전쯤에나 와서 전을 부치고는
힘들어하셨다.
힘든 걸로 치면 우리 어머니가 최고일텐데도
끝까지 손님 맞이는 어머니가 지키시고,
작은 어머니들은 빈 방에 들어가서 드러누워
에고에고 하셨다.
들이닥치는 손님들.
상 치우고, 차 끓이고, 과일까지 먹으면
그 다음에 또 들어오는 손님들.
1년에 한 번 뵙는 분도 있고,
처음 뵙는 분도 있고.
손님맞이를 정성껏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 앉아 있고,
엄마만 종종거렸다.
엄마를 돕고 싶어서
음식도 나르고, 설거지도 하고, 차랑 과일도 내가고 했지만
엄마는 되도록 하지 못하게 하셨다.
결혼 하기 전에 일 많이 하면
결혼하고나서도 일 많이 할 수 있다고
(말이 씨가 된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미리 하지 말라고, 엄마가 다 한다고 하셨다.
사람이 미운게 아니라
이 돌아가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일은 엄마에게 집중되는 분위기.
결혼하면 이 중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건가?
정말 싫다.
이런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조상을 기리고 맞이 준비를 하는 것은
온 가족이 하면 안 되는 건가?
왜 누구는 앉아서 음식만 먹고,
왜 누구는 계속 차리고 치우는 중노동을 해야 하나.
여자는 일하러 시집 온 건가.
같은 여자이면서도 제대로 돕지 않는 작은 엄마들.
무심히 디저트까지 요구하는 남자 어른들.
정말 이게 뭐냐고
상을 뒤집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후에야
작은 어머니들 댁에서 두 번 치뤄지다가
이제야 없어진 제사상
우리 엄마에게는 큰 짐이던 그 상차림이
타인들에게는 어찌나 간단하게 간소화되고 없어지는지
그래도 모시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그리고 그 긴 세월이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모여 송편까지 직접 만들었었는데 ...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즐겁던 추억의 뒤로
힘들었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집 근처 떡집에서 송편을 사와서
가족과 나눠 먹으며 감회가 새롭다.
이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 맛있는거 직접 안 만들고
전문가에게 맡기면
조상님들이 화나서 자손들에게 벌을 내리시기라도 하는 걸까.
이제 다 그만두면 좋겠다.
반가운 만남 속에 덕담을 나누면서
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그렇게 추억을 하나 더 만드는 날들이 되길 빈다.